2009년 11월 26일
블루힐 - 푸른 언덕의 기사
힌치 가(街)는 기사단령에서도 가장 후미진 뒷골목이다. 물론 '기사단령'이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곳은 블루힐 지방의 다른 도시들처럼 한량이나 소매치기, 사기꾼들이 창관(娼館), 도박장, 싸구려 주점과 뒤섞여 굴러다니는 그런 뒷골목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기사단령의 다른 곳에 비해 도로가 좁고, 집이 낡고, 조금 더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장소일 뿐이다. 비록 후미지고 지저분한 거리지만 도로에는 견습기사들이 관리하는 횃대가 일정 거리마다 놓여있어 어둠을 밝혔고, 첫 별이 뜨는 시간까지도 아이들이 조악한 나무칼을 들고 뛰어다녔다.
"이 미스트야드의 야만인아! 나의 검을 받아라!"
"씨이, 나쁜놈아! 오늘은 내가 기사한다고 했잖아!"
초승달이 어슴푸레한 구름에 잠겨 잠을 자는 사이 드문드문 보이는 별들만이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놀이를 내려다보며 반짝였다. 그희미한 별빛을 받으며 사내 하나가 힌치 가의 골목으로 걸어들어왔다. 짙은 감색의 두건을 푹 눌러쓴 사내는 온 몸이 긴 외투자락에 가려 무릎높이까지 올라온 가죽장화를 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낮이었다면 머리까지 눌러쓴 두건의 그림자 사이로 턱이라도 드러났을테지만, 별이 뜨고 달이 잠든 어두운 밤에는 두건 안쪽이 마치 보자기를 둘러쓴 이야기속의 유령처럼 스산해 보이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사내의 등장에 아이들은 잠깐 주의를 기울였지만 놀이에 한창 흥을 올린 아이들은 곧 사내에게 흥미를 잃어버렸다. 사내는 아이들이 전장을 지나쳐 좀 더 좁은 골목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몇 번쯤 골목이 꺽어지는 길을 돌아, 후드를 쓴 사내는 작은 집 앞에 멈추었다. 굵직한 참나무로 기둥을 삼고 벽돌과 회반죽으로 벽을 올린 작은 이층짜리 건물이었다. 그 벽돌집은 낡아서 회반죽이 떨어지고 벽돌이 깨진 곳에는 넝쿨이 자라나 있었다. 사내는 잠깐 현관에 서서 숨을 돌리다가 조심스럽게 나무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으로 들어선 사내는 곧바로 2층으로 가는 계단을 밟았다. 계단의 폭은 무척 좁아서 체구가 그리 크지 않은 사내 한 명으로도 꽉 찰 정도였다. 습기를 머금어 곳곳이 비틀어진 계단은 사내가 밟고 올라갈때마다 삐걱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사내가 막 2층에 도달했을때, 발소리를 들었는지 계단 옆의 방문이 열리며 검은 머리칼의 예쁘장한 소년 한 명이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소년은 사내를 보자 웃으며 말을 걸었다.
"아, 왔어?"
"그래."
"뭘 또 칙칙하게 잔뜩 뒤집어쓰고 다녀. 밤이니까 유령놀이라도 하게?"
소년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사내는 한숨을 쉬며 후드를 벗었다. 후드 안에 드러난 얼굴은, 아직 앳된 소년티가 남아있는 어린 청년이었다. 방 안에서 나온 소년보다 서너살 정도 많은 정도였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옅은 갈색 머리카락을 머리뒤로 돌려서 가볍게 묶었고, 후드 안에는 물소가죽을 무두질해 만든 검은색 갑옷을 걸치고 있었다. 청년의 이목구비는 뚜렷하지만 얼굴선이 갸름하고 눈꼬리가 약간 내려가 있어서 전체적으로 무척이나 온화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청년은 어깨에 맺힌 밤이슬을 털어내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잘 지냈어, 어윈?"
"이런, 진. 뭘 세삼스레. 하루만에 큰 일이라도 날까봐."
"뭐, 넌 황야에 던져둬도 늑대랑 친구먹을 녀석이니까."
"칭찬은 고마운데 아직 그정도까진 아냐. 앞으로 노력해볼게. 그런데 늑대가 먹이를 나눠줄 정도면 되는거야?"
소년은 쿡쿡 거리며 웃었고 청년, 진 역시 미소지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하지만 채 앉기 전에 소년이 발로 침대에 닿으려는 청년의 엉덩이를 슥 밀어냈다. 그 때문에 넘어질뻔한 청년은 소년을 쏘아보았지만 소년은 천연덕스럽게 청년의 로브를 손으로 가리켰다.
"앉으려면 외투라도 벗어. 너 말야, 밤이슬 투성이인데 이불 다 젖는다고."
청년, 진은 다시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소년에게 투덜거리는 대신 얌전히 외투를 벗어서 침대 옆의 의자등걸에 던져두고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 by | 2009/11/26 00:58 | ◆PUB◆ 자작소설방 | 트랙백 | 덧글(0)


















